문화유산
지정번호 | 지정명칭 | 지정일자 | 시대 | 소재지 | 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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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호 | 정사호선생묘역 | 1986.4.28. | 조선 광해군때 | 안흥동 산 21-6 | 정영호 |
정사호(鄭賜湖, 1553∼1616)는 조선 중기 때의 문신으로 자는 몽여(蒙與), 호는 화곡(禾谷), 본관은 광주로 장령(掌令)을 지낸 이주(以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573년(선조6) 사마시에 급제한 후 1577년(선조10)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주서(注書), 호조좌랑, 안동부사, 호조참의 등을 지냈고 금성현령으로 있을 때에는 임진왜란을 맞아 왕자일행의 북행길을 호위하고 현민소개에 힘썼다.
또한 정유재란 때 안동부사로 명나라 군대와 함께 왜적을 토벌하여 큰공을 세워 1601년(선조34) 이래로 다섯 번이나 사헌부 대사헌을 지냈다.
1602년(선조35) 대사헌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이듬해 황해도 관찰사가 되고, 뒤이어 경상도·평안도·경기도 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1609년 선조가 죽자 이조참판으로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이어 한성판윤을 거쳐 1615년(광해군7) 형조판서에 올랐고, 얼마 뒤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광해군 8년 향년 64세로 죽었다. 사후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민(忠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