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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전시장

주 전시관으로 유엔 참전 22개국의 유물 및 자료전시

모형연출

1.4후퇴후 중공군의 춘계대공세를 막아 전세를 역전시킨 지평리전투 외 2종을 모형으로 연출(평양탈환작전,흥남철수작전,지평리전투)

지평리전투 사진

지평리전투

참전국과 동두천

참전국과 동두천시의 교류관계 및 자료 소개

정보검색대

6.25전쟁 당시 벌어졌던 전투를 지역별 또는 국가별로 검색할 수 있고 참전 22개국에 대한 정보를 알아 볼 수 있는 곳

유엔참전국

  • 전투지원국(16개국) :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터키, 필리핀, 그리스,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벨기에/룩셈부르크, 콤롬비아, 에디오피아
  • 의료지원국(6개국) :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이탈리아, 인도, 독일(당시 서독)
    ※ ’18년 독일(당시 서독)이 추가됨에 향후 전시장 설치 예정
유엔참전국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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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국기 클릭! 미국 국기 이미지 영국 국기 이미지 오스테레일리아 국기 이미지 네덜란드 국기 이미지 캐나다 국기 이미지 뉴질랜드 국기 이미지 프랑스 국기 이미지 필리핀 국기 이미지 터키 국기 이미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기 이미지 태국 국기 이미지 그리스 국기 이미지 벨기에 국기 이미지 룩셈부르크 국기 이미지 콜롬비아 국기 이미지 에디오피아 국기 이미지 노르웨이 국기 이미지 덴마크 국기 이미지 스웨덴 국기 이미지 이탈리아 국기 이미지 인도 국기 이미지 독일 국기 이미지
  • 미국 국기 이미지미국 미국은 북한이 소련과 중공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으로 한국의 군사력보다 월등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건설한 후 소련의 사주에 따라 1950년 6월25일 남침을 하게 되자 극동 정세와 한국 사태를 세계적 차원에서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즉, 미국은 북한의 남침을 계기로 아시아의 공산세력도 유럽의 공산 세력과 같이 자유 세계에 대한 호전적인 침략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특히 미국은 한반도를 전략적 차원에서 일본과 태평양 방위권에 파급적 영향을 미칠 중요 지역으로 재평가하게 되었다.
    종래의 소극적이던 대한정책으로부터 적극적인 정책으로 전환한 미국은 전쟁 발발이후 해ㆍ공군의 38도선 이남지역 작전참가, 해ㆍ공군의 38도선 이북 지역으로 확대, 지상군의 참전순으로 참전부대와 작전지역을 확대하면서 한국을 지원하게 되었다.
    이후 미국은 맥아더장군을 유엔군사령관에 임명하고 유엔군사령부를 통하여 모든 참전국의 지휘 및 통제를 전담하도록 함으로서 6.25전쟁을 시종일관 주도하게 되었다.
    • 참전인원 : 1,789,000명
    • 주요전투 : 부산교두보/낙동강전투, 인천상륙작전, 군우리전투, 포크찹전투 등
  • 영국 국기 이미지영국 영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였지만 미국이 제안한 ‘공산 침략행위 정지요청’과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지지함으로서 결의안을 통과시키는데 일조하였다. 그리고 6월 30일 해군 군함의 파견 이후 지상군에 대한 파병을 검토하는 동안 영국의 언론들은 일제히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 자세를 비난하였다.
    미국의 군사 요청과 자국내 여론에 의해 7월 26일 예비로 있던 제29보병여단을 파견키로 결정 하였으나 전황이 어려워지자 8월 20일 긴급 조치로 홍콩에 주둔중인 2개 보병대대를 선발하여 6.25전쟁에 투입 하였다. 영국은 전쟁 초기부터 그들의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함과 아울러 미국과 6.25전쟁을 공동으로 주도하게 되었으며, 또한 영국의 파병은 영연방 계열인 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 등의 참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참전인원 : 62,000명
    • 주요전투 : 장주전투, 박천전투, 고양전투, 적성/설마리전투, 가평전투
  • 오스테레일리아 국기 이미지오스테레일리아 오스테레일리아는 1950년 7월 3일 프리컷함 2척을 출동시켜 7월 30일 한국 해역에 도착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었고, 당시 제한된 정규군만을 보유하고 있어 지상군 파병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병을 통하여 우수장교와 사병을 선출하여 680여명 규모의 포병부대를 신편하여 12월 31일 한국에 참전시켰다.
    • 참전인원 : 5,144명
    • 주요전투 : 연천/고왕산전투
  • 네덜란드 국기 이미지네덜란드 네덜란드 정부는 6월 11일 공식적으로 모병을 통한 엄선된 군인을 통해 파병 준비를 완료했다. 그리고 네덜란드를 출발한지 한달여만에 이들을 태운 수송선은 11월 23일 한ㆍ미 고위장성과 부산 시민의 환영 속에 부산에 상륙 하였다.
    • 참전인원 : 5,322명
    • 주요전투 : 횡성전투, 인제전투, 대우산전투, 평강/별고지전투
  • 캐나다 국기 이미지캐나다 유엔 회원국의 일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하기로 한 캐나다 정부는 7월 4일 때마침 유럽 순방을 준비중인 함대에서 구축함 3척을 선발하여 극동으로 파견하였다. 이 함정들은 진부만을 경유하여 7월 30일 한국해역으로 진입하여 미 극동해군에 배속되었다. 이후 소규모이지만 미국,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세번째로 육ㆍ해ㆍ공군을 6.25전쟁에 파견한 국가가 되었다.
    • 참전인원 : 25,579명
    • 주요전투 : 가평전투, 운천/자일리전투, 연천/고왕산전투, 전곡/나부리전투
  • 뉴질랜드 국기 이미지뉴질랜드 뉴질랜드는 7월 3일 프리킷함 2척을 출동시켜 7월 30일 한국 해역에 도착함으로서 본격적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었고, 당시 제한된 정규군만을 보유하고 있어 지상군 파병에 상당한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병을 통하여 우수 장교와 사병을 선출, 680여명 규모의 포병부대를 신편하여 12월 31일 6.25전쟁에 참전시켰다.
    • 참전인원 : 5,144명
    • 주요전투 : 가평전투, 코맨도작전, 연천/고왕산전투, 고랑포/후크고지전투
  • 프랑스 국기 이미지프랑스 세계2차대전의 악몽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던 프랑스는 자국의 군사 상황을 이유로 구체적인 파병계획에 대해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였지만, 6.25전쟁의 참전을 주장하는 여론이 비대해지고 집단 안보체제 확립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극동함대에서 활동중인 구축함과 지상군을 파병키로 결정하였다.
    • 참전인원 : 3,421명
    • 주요전투 : 원주/쌍터널전투, 지평리전투, 단장의능선전투, 화살머리고지전투
  • 필리핀 국기 이미지필리핀 6.25전쟁이 발발하기 4년전에 독립한 필리핀은 공산 반란군과 교전 상태에 있어 국내 정세가 불안 하였으나 5,000여명 규모의 1개연대 전투단을 파견하였고, 한국에 도착 10일만에 현지 적응 훈련을 마친 대대는 9월 28일 미 25사단에 배속되어 진주 남쪽의 사천으로 이동하여 비행장 경비 임무를 완수함으로 본격적인 6.25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 참전인원 : 7,420명
    • 주요전투 : 개성-평양간 주보급로경계작전, 율동전투, 아스널ㆍ이리고지전투 등
  • 터키 국기 이미지터키 세계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중립국에서 친서방정책으로 선회한 터키 정부는 7월 중순 유엔사무총장으로부터 파병 요청을 제의받자 단시일내에 4,500명 규모의 파병을 결정 하였다. 10월 17일 부산에 도착한 후 경비 임무를 수행중인 AL 제9사단에 배속되어 대구-대전간의 주보급로 경비 임무를 수행하였다.
    • 참전인원 : 14,963명
    • 주요전투 : 군우리전투, 금량장전투, 장승천전투, 고량포/네바다전초전
  •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기 이미지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리적인 여건상 어려움을 표시하였지만 8월 4일 국회 동의를 얻어 전투비행대대의 파병을 결정하고 부대 편성에 착수하였다. 세계2차대전에서 용맹을 떨친 제2전투대대는 9월 26일 더반(Durban)항을 출발함으로써 건국 이래 최초로 극동 지역에 병력을 파견하게 되었다.
    • 참전인원 : 826명
    • 주요전투 : 폭격ㆍ차단ㆍ강압작전 수행
  • 태국 국기 이미지태국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와 같은 날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회복한 태국은 어려운 국내 상황속에서도 자국의 주생산물인 미곡 지원을 유엔에 통보 하였으며, 7월 20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하여 지상군 4,000명의 파병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해군과 공군을 파견함으로써 공산 침략을 응징하는 유엔의 노력을 적극 뒷받침 하였다.
    • 참전인원 : 2,845명
    • 주요전투 : 율동전투, 연천/포크찹고지전투, 사동전투
  • 그리스 국기 이미지그리스 국내 공산당과 내전을 치르기도 하는 등 한국과 유사한 면이 많아 6.25전쟁이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그리스는 내전을 수습한지 1년도 안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수송편대와 3,800명으로 증강된 보병여단의 파병을 제의하고, 12월초 공군의 참전에 이어 중순부터 본격적인 6.25전쟁에 참전 하였다.
    • 참전인원 : 10,580명
    • 주요전투 : 이천/381고지전투, 연천/313고지전투, 연천/노리고지전투 등
  • 벨기에/룩셈부르크 국기 이미지벨기에/룩셈부르크 영세중립국을 포기하고 1949년 NATO에 가입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자국의 방위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벨기에는 8월 25일 파병을 공식 공표 하였고 이 일정에 맞추어 룩셈부르크도 지원병을 모집하여 48명으로 편성된 1개 소대를 벨기에 대대 A중대에 편입 시키고 양국은 벨기에/룩셈부르크대대를 편성하여 한국전쟁에 참전 하였다.
    • 참전인원 : 3,498명/89명
    • 주요전투 : 금굴산전투, 청뤈/학당리388고지전투, 김화/작골전투
  • 콜롬비아 국기 이미지콜롬비아 콜롬비아는 9월 18일 프리킷함 1척의 파견 결정을 시작으로 51년 4월 중순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로 전쟁이 가열되기 시작한 시기에 1,080명으로 편성된 제1보병대대를 부산을 통해 한국에 도착, 본격적인 임무를 수행 하였다.
    • 참전인원 : 5,314명
    • 주요전투 : 금성 진격전, 김화/404고지전투, 연천/180고지전투 등
  • 에디오피아 국기 이미지에디오피아 1935년 이탈리아에게 침공을 받았을 당시 국제 연맹에 지원을 호소했으나 무위로 끝난 경험이 있었던 에티오피아는 황실근위대에서 1,200명을 차출, 1개 대대를 파견할 것을 계획 하였고 이들은 영국군의 지원을 받아 ‘가그뉴 대대’란 명칭으로 창설, 6.25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 참전인원 : 3,518명
    • 주요전투 : 적근산 삼현전투, 김화/삼각고지전투, 연천/요크ㆍ엉클고지전투
  • 노르웨이 국기 이미지노르웨이 노르웨이 정부는 적십자사를 통하여 의료지원부대의 파견을 계획하고 국회가 51년 3월 2일 의료지원부대의 파견에 동의하자 노르웨이적십자가 편성한 83명으로 구성된 이동외과병원을 통해 동두천에서 7월 19일부터 천막으로 된 임시 건물에서 진료 임무를 개시 하였으며, 12월에는 군인과 민간인을 위한 외래환자진료소도 설치 운영 하였다.
    • 참전인원 : 623명
    • 주요전투 : 유엔군과 한국군 부상자 진료, 국립의료원 설립 지원
  • 덴마크 국기 이미지덴마크 덴마크는 6월 27일 유엔이 한국군사원조를 결의하자 한국에 대한 지원을 다각적으로 검토한 결과 최종적으로 의료 지원을 제공키로 결정하고 최신 의료시설ㆍ장비ㆍ의약품 그리고 탁원한 의료진을 갖춘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를 파견 하였다.
    • 참전인원 : 630명
    • 주요전투 : 부산교두보/낙동강전투, 인천상륙작전, 군우리전투, 포크찹전투 등
  • 스웨덴 국기 이미지스웨덴 영세중립국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서방국가와 긴밀한 유대와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남침 공격을 격퇴하기 위한 원조를 권고하자 스웨덴 정부는 야전병원단의 지원을 결정, 적십자사에 이 임무를 위임 하였고, 6.25전쟁에는 후방 병원으로서 부상자 치료의 임무를 수행 하였다.
    • 참전인원 : 160명
    • 주요전투 : 유엔군과 한국군 부상자 진료, 국립의료원 설립 지원
  • 이탈리아 국기 이미지이탈리아 유엔의 회원국이 아니었던 이탈리아는 국제적십자연맹이 6.25전쟁에서 전상자 치료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자 정치ㆍ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하기로 결정 하였고, 자국의 적십자사를 통해 지원하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참전국중 유일한 유엔 비회원국의 기록을 세우게 되었으며 참전국중 가장 마지막에 파견한 국가가 되었다.
    • 참전인원 : 128명
    • 주요전투 : 유엔군과 한국군 부상자 진료, 민간병원 의료진 기술 지원
  • 인도 국기 이미지인도 1947년 8월 15일 신생 독립국으로 출발한 인도는 중립 또는 비동맹 노선을 지지 하였으나 안전보장이사회가 7월 31일 한국 민간인에 대한 구호를 결의하자 이에 동의, 인도 정부는 의료지원부대 제60야전 병원의 파견을 결정 하였고 11월 20일 부산을 통해 상륙하여 미 제8군에 배속되어 본격적으로 6.25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 참전인원 : 627명
    • 주요전투 : 유엔군과 한국군 부상자 진료, 육군병원 의료기술 지원
  • 독일 국기 이미지독일 유엔 비회원국이었던 독일(당시 서독)도 의료지원 활동을 하였다. 서독 정부는 1953년 4월 야전병원 파견을 미국과 유엔에 제의한 뒤, 1954년 5월부터 1959년 3월까지 5년간 부산에 적십자 병원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 서독 적십자 병원이 정전협정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한국전쟁 의료지원국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한 후 국방부와 학계 고증을 거쳐 2018년 6월 한국전쟁 의료지원국으로 공식 인정되었다.
    • 참전인원 : 200명
    • 주요전투 : 서독 적십자 병원은 부산에서 입원환자 및 외래환자를 포함하여 약 30만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

담당부서 정보

  • 담당국 : 경제문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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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팀 : 문화유산팀
  • 전화번호 : 031-860-3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