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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동두천은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아주 이른 시기부터 인간의 거주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동두천을 가로지르는 신천 주변은 선사시대인들이 터를 잡고 살기에 좋은 조건을 제공해 주고 있다. 구석기시대에는 돌을 깨뜨려서 만든 타제석기를 주된 도구로 하여 수렵-채집경제 생활을 하였는데 한군데에 정착하기보다는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면서 생활하였다. 거주환경이 좋은 강가에서 구석기시대인들은 채집과 수렵생활을 하며 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던 것이다.

동두천 지역에서 아직까지 구체적인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발견된 예는 없지만,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을 대표하는 전곡리 구석기유적이 동두천과 인접한 연천군에 위치하고 있다. 이외에도 연천군 남계리·원당리일대에서 구석기유적이 다수 확인되고 있으며 파주시의 금파리에서도 구석기유적이 발견된 바 있어 이들지역과 인접한 동두천지역도 구석기시대부터 이미 인간의 거주가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동두천에 속하고 있지 않지만 과거 양주지역에 포함되었던 지역인 화도면 검터, 두촌, 마진, 마재등지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확인된 바 있어 이를 뒷받침 해 주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구석기가 채집되는 유적이 새로이 확인되어 동두천일대에 구석기시대부터 이미 선사인의 거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는 인류의 생활에서 농경, 목축, 정착생활이 이루어지는 시기로서 특히 농경생산을 바탕으로 잉여생산이 가능해져 인구가 크게 증가하던 시기이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주거지, 무덤, 패총 등이 대표적이며 한강, 대동강 두만강 등의 하천유역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아직까지 동두천에서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거나 유적이 확인된 바는 없지만 청동기시대 유적들은 일부 확인되고 있어 향후 신석기 유적이 발견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는데 이로 인해 다양한 문화적 변화를 겪에 되었고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경제활동의 증가에 따라 부의 집중과 독점이 이루어지게 되어 움집의 규모도 커지고 인구도 상당히 늘 게 되어 마을을 형성하기에 이르고 초기국가형성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동두천지역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많은 선사인들이 거주하였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주거지와 같은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다만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인 고인돌들이 동두천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의 동두천을 파악할 수 있다. 지행동, 송내동 일원에서 고인돌과 관련된 유적이 확인된 바 있는데 고인돌은 일정한 규모 이상의 세력집단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고인돌을 축조할 만한 세력집단이 동두천 일대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고인돌들은 주로 시의 남부, 즉 비교적 저평한 지역이 소규모 하천변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이는 청동기시대의 주거환경화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시가지로 개발된 지점들은 선사시대인들이 생활하기에 매우 좋은 자연적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을 것이지만 이미 개발이 완료되어 유적이 확인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자료 : 동두천시 역사와 문화유적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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